누가 하인리히 힘러와 데이트 했나요?
Margarete Himmler 날짜가 하인리히 힘러 일 때 ?에서 . 까지 나이 차이는 7 년 0개월 28일 이었다.
헤트비히 포타스트 날짜가 하인리히 힘러 일 때 ?에서 ?. 까지 나이 차이는 11 년 3개월 29일 이었다.
하인리히 힘러
하인리히 루이트폴트 힘러(독일어: Heinrich Luitpold Himmler, 듣기 , 1900년 10월 7일 ~ 1945년 5월 23일)는 친위대 국가지도자로서 친위대와 비밀경찰을 지휘했다.
힘러는 홀로코스트의 실무를 주도한 최고 책임자였다. 나치 강제수용소와 학살대인 특수작전집단을 창설한 사람이자, 최종 지휘 책임자로서, 600만에서 1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산업적 규모로 학살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연합군에 의해 주요 전범으로 체포되자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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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레테 힘러(혼전성 보덴(Boden), 독일어: Margarete Himmler, 1893년 9월 9일 ~ 1967년 8월 25일)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의 아내이다.
비드고슈치에서 태어났으며 브롬베르크에 있는 회헤레 퇴히테르슐레(여자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일했으며, 종전 후 첫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아이를 낳지 못했다. 이혼 후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으로 간호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1928년에 하인리히 힘러와 만나 결혼하였고 딸 구드룬 힘러를 낳았다. 구드룬이 태어난 후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하자 아들을 입양하였지만, 결국 1940년에 힘러와 별거하였고 힘러는 그동안 비서인 헤트비히 포타스트와 동거하여 아들 헬게와 딸 나네테를 낳았다.
1945년 마르가레테는 구드룬과 함께 연합군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는데, 특별한 증거가 없자 결국 석방되었다. 그 후 1952년 구드룬이 베델을 떠난 뒤 1955년 가을부터 여동생 리디아와 입양한 아들 게르하르트와 함께 하펜의 아파트에서 살았고 1967년 8월 25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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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트비히 포타스트
헤트비히 포타스트(독일어: Hedwig Potthast, 1912년 2월 5일 ~ 1994년 9월 22일)는 나치 독일 시절 친위대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의 여비서로, 힘러 사이에서 두 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쾰른에서 현지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으며 1928년 중학교에서 마지막 아비투어 시험을 치른 후 외국어 자격을 갖춘 비서로서 훈련을 받았다. 1936년 게슈타포 본부에서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40년에 힘러와 동거를 시작했고 이후 힘러와의 사이에서 아들 헬게와 딸 나네테를 낳았다.
종전 이후 체포되어 미군의 심문을 받았으나 특별한 증거가 없자 석방되었다. 포타스트는 후에 결혼했고 남편의 성을 따랐다. 그녀의 아들은 평생을 병으로 고생하며 그녀와 함께 지냈고, 딸은 의사가 되었다. 1987년 슈피겔의 편집자였던 페터페르디난트 코흐와의 인터뷰에서 포타스트는 힘러의 나치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1994년 9월 22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덴바덴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녀의 딸 나네테는 2000년에 5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아들 헬게는 2005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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