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메리 불린와 데이트 했나요?

메리 불린

메리 불린

메리 불린(영어: Mary Boleyn, 1499년(추정) ~ 1543년 7월 19일)은 16세기 초 잉글랜드 왕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불린 가문의 일원으로,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인 앤 불린의 자매이다. 아버지는 토머스 불린,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하워드이다. 남매로는 앤과 나중에 로치퍼드 자작이 되는 조지 불린이 있으며 오랫동안 세 남매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메리가 장녀, 앤이 차녀이며 조지가 막내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메리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그의 맞수였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두 사람 모두의 정부였던 전적이 있으며, 두 번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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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VIII of England

Henry VIII of England

헨리 8세(Henry VIII, 1491년 6월 28일 ~ 1547년 1월 28일)는 헨리 7세 뒤를 이은 잉글랜드 국왕이다. 튜더가로서는 두 번째 국왕이었다. 헨리 8세는 여섯 번에 이르는 결혼과 이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불화 끝에 수장령을 통해 잉글랜드 교회를 분리 독립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헨리 8세는 교황 수위권에 대항하기 위해 왕권신수설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전제군주로서 행동하였다. 종종 반대자에게 정치적 반역 혐의와 함께 이단 혐의를 씌웠고, 사권박탈법으로 피의자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여 정식 재판 없이 처형하였다. 헨리 8세는 토머스 울지, 토머스 모어, 토머스 크롬웰, 토머스 크랜머 등 두드러진 인물을 총리로 두어 통치하였으나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을 때는 추방하거나 처형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로마 교황청으로 가던 교회의 수입 상당수가 왕실로 향하게 됨으로서 헨리 8세는 유래없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과 비효율적 국정 운영, 막대한 비용을 들인 전쟁 등으로 재정 사정은 좋지 못하였고 종종 파산 위기를 겪었다.

1535년과 1542년 웨일스 법을 통해 웨일스를 잉글랜드의 하위 구역으로 완전히 통합하였고, 1542년 아일랜드 군주법을 통해 아일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20세기에 들어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까지 잉글랜드의 국왕은 자동적으로 아일랜드의 국왕을 겸임하였다.

당대 사람들은 헨리 8세를 매력적이나 야욕이 강한 카리스마 넘치는 통치자로 여겼다. 그는 스스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며 다재 다능한 면모를 과시하였고 각종 스포츠와 게임, 도박 등 활동에도 열정을 보였다. 젊어서는 탄탄한 몸매를 지녔으나 점차 체중이 늘어 중년이 되자 심각한 과체중과 함께 여러 질병을 앓았다. 말년의 헨리 8세는 종종 음탕하고 이기적이며 편집증적인 폭군으로 묘사된다. 헨리 8세 사망 이후 당시 아홉살이었던 에드워드 6세가 후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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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불린

메리 불린
 

Francis I of France

Francis I of France

프랑수아 1세(프랑스어: François Ier, 1494년 9월 12일 ~ 1547년 3월 31일)는 프랑스의 국왕으로 1515년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른 뒤, 1547년까지 통치하였다. 발루아 왕가 출신으로는 아홉 번째 군주이다.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의 첫 번째 르네상스형 군주로 취급받는다. 프랑수아 1세 치세에 프랑스는 거대한 문화적 진보를 이룩하였다. 프랑수아 1세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강력한 맞수인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그리고 쉴레이만 대제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앙리 4세와 더불어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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