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와 데이트 했나요?
Marlene Dietrich 날짜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일 때 ?에서 ?. 까지 나이 차이는 3 년 6개월 5일 이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독일어: Erich Maria Remarque, 1898년 6월 22일 ~ 1970년 9월 25일)는 독일의 소설가이다.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 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18세 때 사범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그 후에 씌어진 <귀로>와 함께 전쟁에 대한 증오를 잘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반전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여러차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더 이상 독일에 있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했고, 2차대전이 터지자 미국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스위스에 정착했다.
그는 또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한 망명객의 불안과 절망을 묘사한 <개선문>을 발표하여 다시 이름을 떨쳤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1947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듬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58년에는 미국의 배우 폴레트 고다드와 재혼하였으며, 로카르노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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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마그달레네 "마를레네" 디트리히(독일어: Marie Magdalene "Marlene" Dietrich, 1901년 12월 27일 ~ 1992년 5월 6일)는 독일 출신의 배우, 가수이다. 《푸른 천사》를 시작으로 조셉 폰 스턴버그가 감독한 일련의 영화에 '팜 파탈' 이미지를 가진 배역으로 출연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스턴버그와 결별한 후에는 가수 활동도 병행하며 영화에 출연했다. 나치 독일에 반발해 독일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연합군 위문 공연을 벌였다. 이때 부른 '릴리 마를렌'은 참전 군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공연 활동에 집중하면서 영화에 출연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빌리 와일더, 앨프리드 히치콕, 오슨 웰스 등이 감독한 영화에 출연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는 그녀를 역대 최고의 여성 배우 중 9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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